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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풍경소리

  • 이번주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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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주 풍경소리


파티마의 비밀
파티마 제 3의 비밀
 
32년전 요한 바오로 2세 저격 당시의 목격자  Wlodzimierz Redzioch 신부의 글에서
                                                                                    2013. 5. 13. (Zenit.org)
                                               I
1981. 5. 13. 오후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수요일의 일반알현이 있었고, 나는 폴랜드 친구들과 함께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군중 속에 있지 못하고 오른쪽 기둥 그늘에 서서, 광장에 모여든 군중들을 보며, 축제 분위기 속에서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교황님의 하루는 분주하였다. - <혼인과 가정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개인별 접견에서는 프랑스의 유명한 유전학자 Jerome Lejeune 부부와 함께 유쾌하게 점심을 들었다. 17시가 되자, 성 베드로 대성전 정면 아래에 있는 종탑 아치로부터, 교황님이 탄 흰색 짚차가 나와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천천히 이동하는 교황을 향해, 신자들이 쳐든 팔 숲속에서는 깃발과 손수건, 그리고 카메라들이 넘실거렸다. 그때 교황님은 풍선을 든 어린이를 받아 입맞추고 나서 그 부모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그 순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광장 주변에 있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즉시 교황의 짚차가 회전하는 주변이 무질서해지며, 자동차가 종탑 아치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교황님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안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는데, Letizia Giudici란 이태리 수녀가 < Ali Agca 를 정지시킨 수녀> 로서 기록에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동산 위의 우리주님’ 이란 프란치스코회의 이 수녀는 1981년 당시 30세로서, 로마의 Antonianum 교황립 학원에서 수학중이었고, 교황님의 일반알현에 참석 중이었다. 교황님이 탄 차가 수녀 앞으로 다가 오자, 수많은 군중이 머리위로 손을 들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고, Letizia 수녀는 가까이에서 한 젊은이가 손을 올리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청년이 사진을 찍으려니 하고 생각하였으나, 그가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그의 손에 총이 들렸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Ali Agca는 총을 쏜 다음 즉시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어느 누구도 범죄자를 정지시키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의 눈은 부상당한 교황이 탄 차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레티치아 수녀는 본능적으로 아그자 뒤를 쫒았다. 터키 청년이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지자, 수녀는 그를 제압하며 등을 덮쳤다. 범죄자가 수녀에게 총을 겨누었으나, 무기는 이상하게도, 아니 기적적으로 고장이 나버렸고, 아그자는 총을 던져버렸다. 수녀의 적절했던 조치로 이태리 경찰들은 그 터키 청년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아그자는 재판 중에 그 수녀를 기억하지 못했으나, 자신을 제압한 여자가 Lucia 라는데 경악하였다. (Letizia 수녀의 세례명이 바로 Lucia 였던 것이다) ‘이 수녀도 Lucia 이고, 또 다른 수녀도 Lucia 이니 묘하군! ’ 하면서 Fatima의 예언을 되뇌었다.
 
범죄자가 바티칸 근처의 이태리 경찰 수사관에 넘겨지고 있을 때, 흰색 짚차는 성당 뒤를 돌아 보건원 건물로 달리고 있었다. 교황의 개인비서 Stanislaw Dzwisz 신부는 ‘Karol(교황)과 함께한 나의 삶’이란 증언록에서, 그 떨리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성하는 내 어깨로 기울면서 옆으로 쓰러지셨다.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다가 이내 평온해 지셨다. 내가 여쭈었다. 어디입니까? 대답하시길, 복부야! 아파요? 아파(Fa male)! 첫째 총알은 복부를 휘집었고, colon결장을 관통하여 소내장을 열고 나가 짚차 안에 떨어졌다. 둘째 총알은 오른 팔꿈치를 스친 후에 왼손 검지를 부수고, 두 미국 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어느 누군가가 앰블런스를 향해 소리쳤다고, Stanislaw Dzwisz 신부는 계속 증언한다. - 그러나 앰블런스는 광장 반대편에 있었다. 짚차는 종탑 아치를 신속히 지나, 성당 후문을 돌아 Fondamenta 길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Grottone 와 Belvedere 공원, 마침내 FAS 방향으로 달려갔다. 바티칸의 건강 담당자들과 상황을 인지한 성하의 개인 주치의 Renato Buzzonetti 박사가 함께 있었다. 나는 교황님을 두 손으로 잡았으나, 통로 바닥으로 늘어지셨고, 그때서야 비로소 많은 피가 뒤로 통과한 탄환 자국에서 분출하는 것을 알았다. 의사는 Gemelli 로 가라고 소리쳤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성하를 살려야 했다. 막 도착한 앰블런스가 전 속력으로 내달았으나, Aurelia 도로에 올라서자 Pineta Sachetti 방향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사이렌 소리도 시원치 않았고, 차가 막히자 운전수는 수시로 경적을 울려댔다.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입에서 입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Attentato! Attentato! = 공격 받으셨데!’ 군중은 울며 절망하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교황께서 사망하셨는 줄 알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공황이나 혼돈은 없었다. 교황알현 관련자들과 경호원들이 사라지자, 군중은 어떤 소식도 얻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순간에 Casimiro Przydatek 신부가, 폴랜드 순례단장으로서, 확성기를 잡고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군중은 기도하고 성가를 불렀다. 참석자 가운데 어떤 사람은 교황께 드릴 선물로 폴랜드에서부터 Czestochowa 성모상 이콘을 가지고 왔었다. 한편, 경찰들의 호각소리와, 앰블런스의 사이렌 소리, 자동차의 마찰소리가 광장을 메웠다.
 
                                                  II
교황은 1981. 5. 13.의 알현에서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말씀하시려고 했었다. - ‘마리아는 영적 기쁨이 가득한 분이시나, 처절하고도 깊은 슬픔과 연결되어 계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이, 우리의 삶도 기쁨과 고통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날 내 생애의 최대의 고통과 공포가 밀려왔다. 사실 나는 고향과 가정과 교수직을 버리고 교황이 계신 로마로 와서, “폴랜드 교황”께 작은 봉헌을 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에 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베드로 성당에서 두 블록 떨어져있는, Pfeiffer 가에 있는, 폴랜드 순례자의 집으로 갔다. 바티칸 통신소 근처에는 이미 기자들로 초만원이었다. 인쇄소 담당 Paciroli 신부가 성하의 췌장을 관통했을 거라고 말했을 때, 모두가 매우 심각해졌다. 폴랜드 숙소에서 나는 Gemelli 병원을 직접 비춰주는 TV 앞에 앉았다. - 앰블런스의 병원 도착 상황과 17:55에 수술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5일이 지나 긍정적인 표시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4일이 지나고, 5일째 되던 날인 5월 17일 주일에, 나는 병상에서 기도하시는 ‘부활삼종’을 듣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호흡곤란으로 쇄약해진 성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울었다. “여러날 동안, 특히 지금 삼종기도 중에 여러분이 나와 함께 일치하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동하고 감사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 강복합니다. 나를 쏜 형제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이미 나는 진실로 그를 용서하였습니다. 사제이며 희생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와 세계를 위해, 나의 고통을 봉헌합니다. 성모님께 반복하여 기도합니다. - 저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Totus tuus ego sum.”  그 순간에는 5월 13일이 그대로 17일 정오에까지 이른 것 같았고, 교황께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지만) 그 광장에 다시 와 계신 것만 같았다.
 
교황께서는 5월 12일(화) 끝기도에서 베드로 사도의 “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1베드 5, 9) ” 를 묵상하였었다. 악마는 아그자의 손을 이용했고, 다른 손은 총알이 (급소를) 비켜가게 하였다. 그 손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손이었다. 교황께서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은 Gemeli 병원에 2차로 입원했던 6월이었는데, 루치아 수녀가 쓴 ‘ 파티마의 제 3의 비밀’ 원본을 봉투에 넣어 가지고가서 읽었을 때, <교황이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호할 것이다>, 저격했던 그날이 바로 동정녀가 발현한 첫 번째 날(5월 13일)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교황께서는 ‘한 손은 쏘았고, 다른 손은 총알을 인도했다.’ 고 말씀하셨다.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그 총알은, 지금 파티마의 성모상 면류관에 장식되어 있다.
 
      엘리사벳을 찾아 걸음을 재촉하셨던, 걸음이 빠르신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2013.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에 천진암 성지 주임 김학렬 신부.
 

Writer : 김학렬 신부    Date : 2013-05-30 11:08   Hit. 4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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